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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논술 특강』 비평

심원. .

『유시민의 논술 특강』은 작년 베스트셀러였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의 부록 성격의 책이다. 유시민 작가는 글을 쉽고,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쓴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글 잘 쓰는 작가의 글쓰기 노하우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최근 글쓰기 관련 도서의 '붐'은 쉽게 글 쓸 수 있는 매체 환경과 함께 입시, 취업, 승진 등을 위한 시험에서 논술과 자소서와 같은 글쓰기가 강조되는 흐름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유시민의 논술 특강』은 특히 후자에 대응한 책이다.  

10년 이상 논술을 가르쳐온 입장에서 어떤 책이든 '논술' 에 대해서 다룬다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유시민 씨와 같은 영향력 있는 작가가 논술에 대해서 조언을 한다는데 더욱 그렇다. 논술 강사의 처지에서 『유시민의 논술 특강』에 대한 소견을 적어보겠다. 글이 조금 길어 결론만 먼저 적는다.

글쓰기에 어떤 원리나 원칙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글쓰기의 조언은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것뿐이며,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쓰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답은 '나는 글쓰기 원리 같은 것은 배운 적이 없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잘 쓰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인 것 같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놀라움을 선사하는 기술(기예)를 보여 준다. 그들 역시 '많이 하다 보니'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뭐든 많이 하면 된다. 그러나 1, 2년 안에 글쓰기 능력을 향상해야 하는 절박한 사람들에게 많이 하다 보면 된다는 식의 조언은 '글쓰기는 원래 잘하던 사람만 잘할 수 있다'는 절망감을 주게 될 뿐이다. 

나는 논리적 글쓰기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원리를 따를 때 글쓰기 능력이 근본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 쪽이다. 그 원리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하여 글쓰기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논술 강사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의 논술 특강』은 현행 논술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논술에 관한 기존의 편견을 답습한 채, 서울대 문제 하나를 골라서 '나는 이렇게 풀었는데, 여러분은 이렇게 못 풀어도 괜찮아요. 많이 하다 보면 나처럼 풀 수 있다'는 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아쉽지만 이 책은 논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는 대부분의 독자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검토하면서 세 가지 기준을 적용했다. 첫째, 학생 혼자서 논술을 준비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둘째, 학원이나 학교에서 논술 수업의 기본 교재로 사용할 수 있는가. 셋째, 일반인들에게 논술 전반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지만 『유시민의 논술 특강』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였으며, 세 번째 기준은 부분적으로 충족시켰다. 이 책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음의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논술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 책은 논술 문제에는 주어진 답이 없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는 논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맞으나 실제 논술 문제의 출제 과정과는 맞지 않는다. 논술에는 답이 없으므로 말이 되게만 쓰면 된다는 생각은 출제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답도 가능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시험을 위한 논술을 가르칠 때는 학생들이 제멋대로 답안을 작성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둘째, 적절하지 않은 문제를 선택했다.이 책에서 표준 문제로 제시하고 있는 서울대 문제는 절대로 표준 문제가 될 수 없다. 서울대는 현재 입시에서 논술 고사를 시행하지 않는다. 현재 논술 시험을 보지도 않는 대학의 문제를 표준 문제로 제시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서울대가 논술 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서울대 문제가 표준 문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이 선택한 서울대 문제의 제시문은 지나치게 길다. 최근 논술 문제들의 제시문 길이는 20문장 내외다. 또한, 논술 문제는 문학이 아니라 비문학 글들을 주로 사용하는데, 『유시민의 논술 특강』은 문학 제시문만을 다룬다. 또한, 최근 논술 문제는 두 개 이상의 제시문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는데 이 책은 하나의 제시문만 활용한 문제 풀이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최근 대학의 논제 유형에 맞지 않는다. 각 대학의 문제 유형은 각기 다르며 수험생들은 유형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유시민의 논술 특강』은 논술에 관해서 설명하기에 적절치 않은 문제를 선택했고, 그 결과 이후의 모든 설명이 실제 논술 고사와는 동떨어진 내용으로 채워졌다.

셋째, 체계적 방법론이 없다. 이 책이 논술을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혼자서 따라 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방법론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고 잘못되었다. 이 책은 구체적 방법론이 없이 '나는 이렇게 풀었고, 이렇게 생각했다'는 필자의 사고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마치 김연아가 "나는 이렇게 점프한다"고 한 번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김연아의 점프를 계속 본다고 해서 김연아처럼 점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빙판 위에서 쓰러지지 않고 서는 방법, 기본자세, 속도를 높이는 법, 멈추는 법 등 세부적인 단계를 제시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또한, 제시하는 방법들도 현실에서 써먹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이 책은 문제 풀이의 첫 단계로 시간 배분을 제시하는데, 이는 실제 논술 문제를 풀어본 사람이라면 웃을 일이다. 대학마다 시험 시간과 문제 수가 다르므로 시간 배분은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서울대 문제에 국한해보자. 서울대 논술 고사는 다섯 시간 동안 치러지는 것이 맞지만 점심시간을 기준으로 3시간, 2시간으로 나눠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책은 한 번에 다섯 시간의 시간 배분을 하라고 제안한다. 대부분의 논술 고사는 길어야 2시간 짧으면 70분이다. 또한, 논술 문제 풀이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논제 분석과 제시문 분석 단계에 대한 설명 역시 불충분하다. 이 책은 논제와 제시문 분석에 대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채 곧바로 제시문 분석과 개요 작성으로 넘어간다. 수험생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읽기와 쓰기 방법론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논술 글쓰기를 답안 쓰기로 규정하고 논술 답안에 필요한 논리적 글쓰기의 요소들 역시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은 학생이 혼자서 논술을 준비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없고, 이 책을 바탕으로 논술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다. 

넷째, 현실 논술 교육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논술 학원의 수업은 배경지식 + 답안 암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논술고사 시행 초반인 1990년대 중후반 이후로 예시답안을 외우게 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학원은 없으며 배경지식 중심의 강의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또한 '배경지식'에 대한 개념 정의도 불분명하다. 현행 논술 문제들은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배경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책들을 읽는 것보다 교과서와 수능 교재의 지문을 읽는 것이 현실에 맞다. 이 책에는 논술 제시문이 너무 어려워서 화가 난다는 식의 표현도 있는데, 최근 논술 문제에서 사용하는 제시문이 매우 짧아졌고 그 수준도 교과서나 수능 교재 수준이라는 점도 잘 모르는 듯하다.

이러한 분석을 종합해 볼 때, 이 책은 논술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근본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채 답습하는 측면이 많다. 대입에서 논술 고사가 시행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논술고사는 해마다 출제 경향이나 난이도가 달라진다. 이 책은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던' 논술과 현재 진행형 논술의 차이를 간과했다. 저자 스스로 "표준 방법론"이라고 내세우는 이 책의 문제 풀이 과정은 10년 이상 논술만 가르쳐온 논술 강사로서는 민망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딱 맞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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